2011년 5월 23일 월요일

미친 사람들을 만났다.

  미.친.사.람.들.을 만났다.



띠리리~

" 혹시, A씨세요?"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B인데, 기억하세요? "  

"글쎄요....."

B는 내 기억을 더듬게 했지만 생경한 이름. 하지만 8년전의 어느 장소를 얘기하자
만나면 알듯 싶다고했다. B는 내 전화번호를 알아낸 경위와 만나고 싶은 이유를 설명했다.
요는, 그 동안 뉴욕 직장인 연극팀에 들어가서 3년간 연극을 했는데 이제는 직장인 연극이 아닌 진짜 연극을 하고 싶단다.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였다.

연극....?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빡빡하다!

목소리를 들어보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듯 하고 짧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듯 해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미팅 장소,  FLUSHING.

약속장소에 미리나와 기다리고 있는 B는 8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달라진 점이라면
그때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지금은 안경을 벗고 콘텍트렌즈를 끼고있다.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잠시 얘기하고 나를 만난 이유를 말했다.

" 제대로 된 연극을 하고 싶어 미치겠다" 고 자기를 도와달란다.

--제대로 된 연극을 하려면 제대로 된 연출과 배우들을 찾아가봐야지 왜.... 나를.....

B만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5분후 C가 들어왔다. B가 부른것이다.  C 또한 5년 전, 조명때문에 안면이 있는 분. 그는 한국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12년전에 미국으로 연극유학, 그의 말을 빌어 표현하면 먹고 살기위해 연기는 옛적에 그만두고 무대조명일을 하고 있다.   5년 전에 얄쌍했던 얼굴은 없어지고 이젠 제법 푸짐하게 살이 올라온 40의 중년이 되어있다.  

자리에 앉아 나를 보더니 C가 말한다.

"생활에 떠밀려 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행복하지가 않아요. 미국에 와서 공부했던 이유는 연극을 하려고 한건데....  결혼해서 아이낳고 생활이라는 것을 하다가 요새.. 나를 보니 난.... 참 불쌍한 놈인거예요. 저.... 참 행복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아니  딱 2시간 만이라도 좋으니 연극을하고 싶어요.  연극을 안해도 좋아요. 연극에 대해서만이라도 서로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한 가정의 가장이자 뉴욕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의 조명을 설치하는 그가 딱 한번 봤던 나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털어놓는다.

--이거 참. 정신과 치료를 해주는 의사도 아니고.....  이게 뭐야.

B는 갑자기 지나가던  D를 부른다.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하더니 D에게 자리 앉기를 권한다.

--- 지나가는 사람 모두 부르려나?

D는 앉자마자.  " 저는 연극을 참 사랑합니다. 너무 좋아요. 연극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지만 좋아서 무작정 연극합니다"

세명은 4시간동안 그들의 연극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을 내게 퍼 부었다.  그동안 직장인 연극인팀에 들어 한번씩 만나 이런 저런 연극에 출연했지만, 얼마전 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연극을 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졌다고.

어메리칸 드림을 품고 이민와서 사는 동안 그들은 꿈을 가슴 한쪽에 밀어넣었다.
한쪽 가슴에 파묻고 살면 되는 줄 알았단다. 서서히 잊혀질거라고....그런데, 밀어넣을 장소가 이젠 없단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도 예전에 고이 묻어두었던 연극이 가슴에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삐져나온다고.  

어머니뻘 되는 B 그리고 두 중년 남자.

연극이라는 것, 두렵고 어려운 작업임에도 이들은 겁을 상실한 체 덤비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 미친것이다. 직장 생활, 가정, 교회등... 여러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하고 있으면서도 잠을 덜 자고라도 연극을 하겠다니.... 늦바람에 미친것같다.

나는 오래전에 연극을 전공했다.  유학까지 마쳤지만,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닭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대에서 도망쳐 미국에 시집와 살아보니.... 생활이 정말 빡빡하다. 연극을 가슴에 묻은지 오래.....   일부러 연극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생각만 해도 신열이 올라온다.   세사람이 불을 뿜어내듯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벌~ 벌~ 떨었다.  가슴이 뻑뻑하고 금방이라고도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연극을 입에 올리는 것이 두려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나에게 같이 미치자고 한다.  글쎄.....   미치기에는 너무 멀쩡한 듯.

더 이상은 연극으로 울고 싶지 않다. 아파하고 싶지도 않다. 겁쟁이라고 해도 어쩔수 없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 선생님이 나를 항상 이렇게 불렀다.   연극에 미친년~
연극에 미친년도 생활이라는 것으로 정상인이 되버렸다.

.........................................

오늘 만난 미친 사람들의 광기가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기를.....    그들은 절.대.로 정상인이 되지 않기를 이기적으로 바래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