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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일 화요일

Washington Square Park ( 1 ) : VISIT NYC

뉴욕시에는 1900개의 공원이 있다고 한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그 중에 가장 알려진 공원하나로 그리니치 빌리지 인근의 미팅과 문화 활동을 위한 주요 장소로 쓰이는 곳이다.



공원 북측에 세워진 워싱턴 기념 아치와 중앙에 위치한 분수대는 인근주변의 주민들과 여행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 중에 하나다. 공원을 중심으로 둘러 쌓인 대부분의 건물은 New York UniversityNYU에 의해 지어지기도 했고, 대부분의 건물들은 학문을 위한 건물이나 주거 건물로 용도를 개조했다.


5TH AVE의 시작인 워싱턴 광장 공원은 NYU(동쪽), McDougl Street (서쪽), West 4th Street(남쪽), Waverly Place (북쪽)로 둘러쌓여있다. 공원은 북쪽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취임 100주년 기념을 위해 세워진 아치와 중앙에 큰 분수대가 위치해 있으며, 아이들의 놀이터, 나무와 꽃밭을 지나는 산책로, 체스 게임, 스크래블 게임, 스케이팅과 피크닉 테이블, 기념 동상들과 또한 애완견 놀이터를 포함하고 있다.
 
기념동상에는 조지 워싱턴을 포함하여 이탈리아 애국자이자 군인인 Giuseppe Garibaldi, 지휘관 Alexander Lyman Holley가 있다.
 
뉴욕시 경찰국은 공원과 뉴욕 대학 공공 안전을 위해 감시 카메라를 운영하고 있고, 공원을 경비하는 경비원이 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 2011. 4. 분수대.  시즌이 아니라 분수대안에는 물이 없다.
대신, 사람들이 분수대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 흑인들의 땅.
이땅은 좁은 습지 골자기와 Minetta Creek 나누어져 있었다. 17세기 초, 미국 원주민의 Sapokanikan이나 담배밭으로 알려진 마을이 가까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공격하고 몰아내기 전에 워싱턴 광장 공원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7세 중반, Minetta는 네덜란스 사람들에 의해 농장으로 사용된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 땅을 미국 원주민들을 쫒아내거나, 원주민으로부터 보호를 해주는 사례금으로 노예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유를 주었다. 땅을 사례금으로 받은 노예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땅에서 나오는 이익금의 일부를 Dutch East India Company에 납부해야만 했다. 또한 아이가 태어나면 자유인이 아닌 노예가 되었다. 뉴욕의 저명한 작가이자 사회 해설자인 Prince Kusi그 지역은 1643~1664까지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소유였다라고 주장한다. 그후로 워싱턴 광장 공원은 “the land of the blacks"(흑인들의 땅)으로 불리운다. the land fo the blacks 의 소유자중의 하나로 자유인이 된 노예 Paulo D'angola가 포함되어있다. 더 많은 정보는 ”Slaveary In New York"의 맨하탄의 뉴욕 역사학외에서 찾을 수 있다.



공원은 17974월까지 농장으로 남겨져 있다가, 뉴욕 위원회가 Minetta 동쪽 밭을 매입, 공중 묘지로 사용되었다. 정체불명의 사람이나 궁핍한 사람들의 시신 매장지로 사용된다. 하지만 19세기 초, 뉴욕은 전염성 황열병이 휩쓸었을 때 ( 이 지역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신을 위생 안전을 위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매장시킨다.
1825년 묘지를 닫는다. 현재까지 20,000여구의 유골이 워싱턴 스퀘어에 땅에 묻혀있다고한다.

1826년 뉴욕시가 Minetta 서쪽땅을 매입하면서, 지금의 분수대와 워싱턴 아치가 놓여있는 자리를 수평하게 보수하고 워싱턴 군 연병장으로 만들어진다. 군 연병장은 국가의 방위에 자발적인 민병대가 국가의 방위를 훈련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 광장을 둘러싼 거리는 1830년대 가장 소유하고 싶은 주거장소가 된다. 그때 세워진 공원 북쪽의 그리스 리바이벌 스타일 집들은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1849년과 1850, 연병장은 공원으로써 다시 고치게된다. 산책길과 울타리를 더 만들었다. 1871, 뉴욕시가 담당하는 공원의 감독하에 들어오고, 이때 다시 한번 설계를 하고, 구불어진 길은 직선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1889년 조지 워싱턴의 취임식 1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고약과 나무로 기념 아치를 5th Ave 공원의 북측에 건립된다. 이 고약과 나무로 만들어진 임시 아치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 1892년 대리석으로 세워지게 된다. 뉴욕건축가 Standfor White에 의해 세워졌으며, 77feet (23m) 높이로 세워진다. 아치의 동쪽 다리를 기둥을 위해 굴착 도중,10feet (3m) 깊이에서 1803년이라고 묘비와 관, 그리고 유골들이 나왔다.


아치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
“Let us raise a standard to which the wise and the honest can repair. the event is in the had of God" - Washington.

 
 

   
    SUBWAY : W.4TH ST   ( A,C,E,F,V Line)
                        Exit 3rd Street.

   더 많은 정보는 : www.gvba.org

2011년 4월 21일 목요일

Street Performer : Washington Square Park, NY

4월 햇빛은 따사롭지만 바람이 차가운 날.

뉴욕의 유명한 5th Ave가 시작되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밟았다.

Passion Week 이자  Easter 이 다가와 학교는 일주일 방학이다.


미국, 유럽이 부활절 방학으로 다른때보다 뉴욕은 어디를 가든 가족들로 붐빈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도 유명한 곳이라 여러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행객으로 붐볐다.

공원아치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들려온 아코디언 연주는 바로 이사람이 연주한것이다.






선글라스를 낀체 연주를 한 것은 내가 공원으로 들어가면서 본 장면.
안경을 쓴 모습은 공원을 빠져 나올 때의 것인데, 방송국에서 이 남자의 연주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람의 연주에 사연이 있는지.... 혹시... 유명한 아코디언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공원을 걷다보면 많은 소리들이 겹쳐서 들려온다.
아코디언 연주가 귀에서 약간 멀어질 무렵, 탬버린과 함께 경쾌한 기타연주가 들려온다.


기타연주가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도록 하였고, 음악을 모르지만 위트가 있었던 연주였다.
듣는 동안 연주에 맞춰 웃기도하고, 몸을 흔들기도 했다.
이 사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기타소리에서 몇 발짝 멀어지자 드럼소리가 귀를 잡아 당겼다.
이 밴드의 연주에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주위에 있던 3~4살 어린 아이들이 이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었고, 재즈를 좋아하는 흑인들이 주위에서 추임새를 넣고, 웃고,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흡사 한팀같다는 생각을 했다.
카멜색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한 흑인 아저씨는 연신 이들의 연주가 아주 흡족하다는 싸인을 주고 연주자들 역시 흑인 아저씨의 싸인에 답례를 하듯 흥을 돋구는 장면이었다.





거리 연주자 못지 않게 공원으로 의례 있는 미술가들.
오늘은 어쩐지 한분만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공원에 이들의 소리가 없다면 어떨까?
글쎄....
참 심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팁한번 제대로 넣어주지 못했지만, 다음엔 이들의 연주를 끝까지 감상하고
감사한 마음에 팁도 넉넉히 넣어준다면 어떨까?